“아이 봐줄 사람 곁으로” … 가족들, 한동네 뭉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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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상담소 댓글 0건 조회 3,163회 작성일 06-11-16 10:43본문
“아이 봐줄 사람 곁으로” … 가족들, 한동네 뭉친다
[조선일보 이경은기자, 신지은기자]
경기도 분당 야탑동 A아파트엔 ‘홍(洪)씨네’가 씨족(氏族)을 이루고 산다. 홍일현(64·퇴직 세무사)씨의 1남3녀 중 세 딸이 친정 옆으로 이사온 것이다. 세 딸 부부는 모두 맞벌이라 친정 어머니가 손주만 4명을 돌보고 있다. 사위들에게 받는 용돈(아이 1인당 50만원씩 월 200만원)이 두둑하다. 서울 용산에 살다가 올해 초 처가 곁으로 이사온 막냇사위 김모(33·인사컨설턴트)씨는 “처형들과 한동네에 사니까 좋은 점이 많다”고 말했다.
◆뭉치는 가족들
맞벌이 부부 300만쌍 시대의 가장 큰 고민은 육아 문제. 맞벌이들이 아이를 맡기려 친정·시댁 곁으로 가는 추세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요즘은 형제·자매, 사촌이며 사돈들까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새로운 형태의 ‘씨족사회’가 출현하고 있다.
용인 수지에 사는 박재희(34·교수)씨와 박씨 언니는 지난 5년간 두 번 이삿짐을 쌌다. 친정이 이사갈 때마다 졸졸 뒤를 따라간 것이다.
본지와 리서치전문업체 ‘엠브레인’이 지난 7~9일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도 맞벌이 부부 308명 중 126명(45.9%)이 육아 때문에 친정이나 시댁 옆에서 살고 있다고 답했다.
가족의 대이동은 아이를 봐 줄 사람을 중심으로 순식간에 이뤄진다. 부산에 사는 신은혜(37)씨는 4년 전 출산 후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했다. 그러자 맞벌이인 남동생 부부가 “이왕 애 보는 김에 조카 한 명 더 봐달라”며 신씨집 근처로 이사를 왔고, 지난해엔 시누이 부부까지 같은 아파트 단지로 이사 왔다. 올해 결혼한 신씨의 막내 여동생도 신씨집 인근에 신혼집을 마련했다.
이제 모든 가족 모임과 일정은 신씨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의사결정의 주도권까지 신씨가 쥐고 있다. 신씨는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면서 서로의 필요에 의해 형제간의 정이 더욱 돈독해졌다”고 말했다.
‘사돈집은 멀어야 한다’는 옛말과 달리, 손주 때문에 ‘한동네 사돈’으로 뭉쳐 살기도 한다. 올봄 서초구에 사는 친정 부모 곁으로 이사 간 이재은(34·회사원)씨는 “친정 엄마에게만 아이를 맡기기가 미안해 남편을 설득했는데, 시부모님도 우리 집 인근으로 이사 와서 아이들을 돌봐주시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장모(37·의사)씨는 서울 서초동의 40평대 아파트 두 채를 개조(改造)해서 시부모와 ‘한 지붕 두 가족’으로 살고 있다. 반년 전 아파트를 나란히 두 채 얻어 양쪽 집 사이의 발코니 벽을 허물어 터버렸다.
‘신(新)씨족’은 아파트 평면도도 바꿔놓는다. 내년 입주 예정인 동탄의 두산위브(51평형)는 1층과 2층을 복층 구조로 통합해서 3세대가 같이 살 수 있도록 설계됐다. 두산산업개발 관계자는 “분양가는 다른 층보다 높았지만 맞벌이 부부에게 호응이 높아 13가구가 모두 분양 완료됐다”고 말했다.
◆새로운 갈등도
그러나 함께 살다 보니 새로운 갈등도 싹튼다. 예컨대 ‘사위 사랑은 장모’라던 속설을 깨고 장모와 사위가 갈등을 겪는 경우도 종종 있다.
2년 전부터 처갓집 인근에 사는 노모(35)씨는 “웬만하면 장모한테 아이를 맡기지 마라”고 광고하고 다닌다. 노씨는 “저녁마다 딸(3)을 데리러 처가에 들르면 ‘능력 없는 자네 때문에 내 딸이 밖에 나가 돈 버느라 생고생 하지 않느냐’고 눈을 흘기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 8월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이 부부상담 519건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배우자나 처가의 부당한 대우’로 인한 남성들의 상담 건수가 89건 중 10.1%로, 전년에 비해 2.2배나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느슨한 형태의 씨족사회가 더욱 전파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유럽 등지에서도 부양·양육을 목적으로 가족들이 한 지역에 모여 사는 ‘소형 커뮤니티(Minimal community)’가 등장하고 있다.
이화여대 함인희 교수(사회학)는 “가족 중 특정인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다면, 소규모 커뮤니티는 맞벌이 부부들의 육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훌륭한 대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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