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늘아, 설날 너만 힘드냐.... 나도 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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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상담소 댓글 0건 조회 2,697회 작성일 11-01-26 09:49본문
"며늘아, 설날 너만 힘드냐… 나도 죽겄다"
괴로운 시어머니들,
며느리는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가워
애써 배려해 청소·음식 다 해도
"그게 더 불편해요" 반응에 힘 빠져…
윗세대로부터 전수받은 집안 전통
신세대 아들 가족은 거부해 당혹
'전통의 수호자'라는 강박 벗어나하는 며느리를 둔 주부 이성실(가명·63)씨는 명절이면 으레 혼자서 장 보고 음식을 한다. 직장 다니느라 바쁜 며느리한테 일을 맡기자니 마음이 편하지 않다. 그저 설거지 정도만 며느리에게 시킨다. "요새는 사위가 아니고 며느리가 백년손님이라니까요."
↑ [조선일보]일러스트=박상훈 기자 ps@chosun.com
◆ 가족 구조의 변화 절감하는 위치
주부 이정희(가명·59)씨는 "남편과 둘이서 단출하게 지내다가 아들 가족이 오면 솔직히 불편하지만 명절에라도 가족의 의미를 확인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씨 친구들 사이에선 "(명절에 자식 가족이)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는 우스개가 유행이다.
전문가들은 명절 시어머니의 스트레스를 "한국 사회의 급격한 가족 구조 변화가 낳은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여성가족부가 24일 발표한 '제2차 가족 실태'에 따르면 "친부모가 가족"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5년 전 93%에서 78%로 "시부모나 장인·장모가 가족"이라고 답한 사람은 80%에서 51%로 줄었다. 혈연보다는 동거 개념의 협소한 가족관이 확산되고 있다. 핵가족으로 살면서 협소한 가족관에 익숙한 사람들이 명절에 일시적으로 '대가족'의 울타리 안으로 가면 어색해진다. 이 어색한 상황을 타파하고 가족 간의 동질성을 찾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는 위치가 바로 '집안의 안주인'인 시어머니이다.
고려대 심리학과 성영신 교수는 "평상시에는 '너희는 너희 식으로 살아라'면서 아들의 가족에 대해 쿨하게 생각했던 시어머니도 명절에 대가족이라는 틀로 들어가면 '우리 가족의 정체성을 확인해야 한다'는 핏줄 의식의 강박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평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던 며느리의 이질적인 행동이 눈엣가시처럼 도드라져 보이는 것이다. 성 교수는 "시어머니 세대는 현실에선 산업사회의 핵가족으로 살지만 심리적으로는 자신이 과거 경험했던 농경사회의 대가족을 이상적인 가족 형태로 생각한다"며 "우리 사회의 과도기적인 가족 변화를 가장 절감하게 되는 가족 내 위치"라고 말했다.
◆ 며느리와의 세대 차를 집중적으로 느끼는 명절
"우리 젊었을 땐 명절에 찍소리 없이 시어머니한테 살림 배웠어요. 며느리한테 이제야 물려주는가 싶었는데 그걸 거부하니 답답하지요." 명지대 문화심리학과 김정운 교수는 "현대의 시어머니들은 '전통의 수호자'로서 과거 윗세대로부터 전수받은 리추얼(ritual·의례나 의식)을 당연히 후세대에 전수해야 한다는 의무와 책임을 느끼고 있는데, 세대가 바뀌어 그게 안 되니까 당혹감과 불안감을 동시에 느낀다"고 했다.
명절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의 세대 차를 집약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기간이기도 하다. 대화 전문가인 이정숙 에듀테이너그룹 대표는 "따로 살 때는 세대 간 불편함을 겪을 겨를이 별로 없지만 일정 시간을 한 공간에서 머물러야 하는 명절에는 평소 잘 안 보였던 세대 차가 더 부각된다"고 했다. 성영신 교수는 "애정이라는 콩깍지가 씌워져 자식에게는 덜 느꼈던 세대 차를 엄밀한 의미에서 남인 며느리에게서는 훨씬 크게 느끼게 된다"고 했다.
◆ 전통의 수호자 강박을 벗어라
김 교수는 "시어머니들이 전통의 수호자가 돼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이 대표는 "차례상에 올라갈 음식은 반드시 집에서 만든다는 생각을 바꿔보라"고 했다. "올해는 부침개는 사 볼까, 떡은 사서 먹자"는 식으로 나서서 바꾸면 며느리도 편하고, 시어머니도 편해진다. 아들에게 설거지 등 자잘한 일을 배분하면서 며느리와의 세대 차를 더는 것도 방법이다.
가족이 명절 내내 집에만 있지 말고 밖으로 나가 시어머니에게 '쉬는 시간'을 주는 것도 효과적이다. 성 교수는 "명절에 시어머니들에겐 가족의 음식과 행사를 책임져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예상외로 크다"며 "밖에 나가 영화를 본다든지 고궁을 가본다든지 하면서 시어머니가 평소처럼 조용히 있을 시간을 주면 명절 신드롬을 덜어줄 수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 김미리 기자 | 입력 2011.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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