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휘두르는 내 남편 처벌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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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상담소 댓글 0건 조회 2,749회 작성일 10-12-01 10:40본문
"칼 휘두르는 제 남편, 처벌해 주세요"
가정폭력 아내의 투신, 헛된 죽음이었나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 한국행사 20주년 기고①] 무관심, 침묵, 그리고 아내폭력(1)
10.12.01 09:24 ㅣ최종 업데이트 10.12.01 09:24 김홍미리 (hot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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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5일부터 12월 10일까지는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이다. 1991년 세계에서 활동하는 여성운동가들이 세계여성폭력추방의 날(11월 25일)부터 세계인권선언일(12월 10일)까지, 총 16일간 여성폭력을 추방하기 위한 공동행동을 하기로 결정한 이래, 한국여성의전화는 매년 이 기간동안 여성폭력의 심각성을 알리고 근절하기 위한 캠페인을 전개해왔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올해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 한국행사 20주년을 기념하며 연대단체들과 함께 한국사회 여성폭력의 심각성을 돌아보는 기고문을 총 6회에 걸쳐 싣는다.... <기자 주>
2009년 가정폭력의 사회적 비용을 추산한 연구는(문유경, 2009) 가정폭력이 특별할 것 없는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 연구에 의하면 2007년 한 해 동안 가정폭력상담소를 이용한 사람은 약 6만 2천 명이며, 5천 명의 여성이 쉼터로 긴급 피난했다.
지난 1년 동안 남편의 폭력을 경험한 여성은 총 368만 명이고, 이중 신체적 폭력을 경험한 여성은 104만 명. 목을 조이거나 혁대, 칼 등으로 위협당하거나 맞는 등의 심각한 가해를 당한 여성도 50만 명에 달한다.
가정폭력방지법과 가해자 처벌법이 제정된 지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가정폭력의 비극은 끝나지 않고 있다. 매년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이 되면 한국사회는 아주 잠깐씩 고통 속에 살아가는 아내들의 삶에 주목한다. 하지만 문제해결을 위해 발 벗고 나서기는 망설인다.
당장 나의 문제가 아니라는 덤덤함, 어디 그 문제가 그리 쉽게 해결되겠느냐는 회의감, 다른 중요한 일부터 먼저 해결하자는 둔감함, 가족인데 설마 죽이기야 하겠느냐는 무지함. 이들이 교차하는 지점에 가정폭력에 대한 무관심과 침묵이 깊숙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이것은 가정폭력을 지금까지 방치하고 많은 여성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아주 "사소한" 이유들이기도 하다.
살인도 '부부싸움'이라 부르는 나라, 대한민국
2009년 한국여성의전화가 발표한 통계에 의하면 언론에 보도된 사건만 보더라도 한 해 동안 최소 70명 이상의 여성이 남편에 의해 살해됐고, 2010년 10월 현재까지 67명의 여성들이 아내폭력으로 살해됐다. 그리고 45명의 여성은 간신히 살아남았다.
가정폭력의 심각성을 알리는 이런 지표들은 우리나라의 공식통계 목록에 포함된 적이 없고, 시민단체에서 언론을 통해 접한 기사를 모아 집계한 이 숫자가 유일한 자료다. 지난 2년 동안 언론 모니터링을 하면서 새삼 심각하다고 느낀 문제는, 대부분의 언론보도에서 아내살해 기사는 "부부싸움"으로 설명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내살해를 가정폭력이 아니라 '부부싸움'의 범주로 설명하려는 현상은 가정폭력을 철저하게 사적인 영역으로 사고하고 있는 한국사회를 반영한다. 하지만 아내폭력은 단순히 '부부싸움'이라 할 수 없다. 아내폭력은 '부부'라는 이유만으로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갈 뿐 아니라 가족구성원의 안전권과 생명권을 위협하는 중대한 범죄다.
'아내폭력', 주변인도 피해 입는다
'아내폭력' 가해자에 의한 구체적인 피해는 주변 이웃에게도 일어난다. 가장 흔하게 입는 피해는 아내폭력 와중에 일어나는 가해자에 의한 방화사건이다.
가해자는 흔히 가족들에게 같이 죽자며 칼을 들이대거나, 가스 밸브를 연다. 바로 며칠 전인 11월 28일 김포에서 일어난 화재 사건 역시 가정폭력으로 인한 방화였고 이 화재로 이웃사람 1명이 사망했다. (이 사건도 다수 언론의 보도에서 '아내폭력'이 아니라 '부부싸움'이라 설명됐다).
4명의 목숨을 앗아간 11월 22일 삼성동 방화사건 역시 30년 동안 끈질기게 아내를 의심하고 폭행해왔던 남편의 마지막 보복이었다. 이 사건은 의처증을 견디지 못한 부인과 이혼한 남편이 전처의 사무실을 찾아와 분신, 4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이다. 이 사건 뒤에는 폭언과 폭행을 넘어, 방화로까지 이어진 가정 불화의 끔찍한 그늘이 도사리고 있었다.
방화만이 아니다. 지난 10월 26일에는 광주에서 초등학생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이 아이가 죽어야 했던 이유는 폭력 남편의 옆집에 살았다는 이유뿐이었다. 이 초등학생은 옆집 아저씨가 죽였고, 그 아저씨는 의처증이 있는 전형적인 가정폭력 가해자였다. 폭력 남편은 아내를 죽인 뒤 아무 상관도 없는 이웃집에 들어와 집안에 있던 아이를 살해했다.
1월 31일 경기도 안산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 폭력 남편은 지난 1월 아내가 늦는다는 이유로, 공기총을 장전하고 아내의 가게로 쫓아가다 주차장에서 만난 이웃을 총으로 쏴 살해했다.
폭력 남편의 분노는 아내에게 집중되지만, 아내를 살해하기 위해서 가해자는 기꺼이 주변인들의 희생도 감내한다. 따라서 아내폭력은 절대로 부부싸움이 아니며 부부싸움이라 불러서도 안 된다. 아내폭력을 계속해서 부부싸움이라 부르며 위험성을 은폐할 때 아내는, 아이들은, 이웃은, 사회는 안전해질 수 없다.
"남편 처벌해 달라"며 딸과 투신한 아내, 그러나
지난 5월, 진도대교에서 다섯 살짜리 딸과 함께 바다로 투신한 여성이 있었다. 살아생전 남편의 폭력을 알리지도 못하고 어린 아이들에게 모진 상처만 줬다며, 이제는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죽음으로 가정폭력을 고발한다는 23장의 유서를 남기고 떠난 故 이금례(가명)씨였다.
23장의 유서에는 가해자들의 전형적인 수법들이 적혀 있었다. 남편 최정환(가명)은 남이 보는 앞에서는 한없이 자상한 남편이었지만 현관문이 닫히는 순간 돌변했다. 칼을 들이대며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했고 실제 돈을 내놓으라며 칼을 휘둘러 상해를 입혔다.무엇보다도 이씨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아이들에게 행해지는 욕설과 폭력, 경제적인 착취, 정신병원에 감금시키려는 등 사회적으로 매장하려했던 온갖 시도들이었다.하지만 떠나간 아이와 이씨의 죽음은 말 그대로 '헛된 죽음'이 됐다. 이들을 죽음에 이르게한 가해자 남편 최씨는 1심 재판부(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 형사5단독, 판사 김성우)로부터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선고이유는 ▲故 이금례씨가 자살하기 2년 전 전치 3주의 상해와 생존한 딸의 가벼운 상해만을 기소했다는 점 ▲기소범위 밖에 있는 피해자의 자살은 직접적인 양형요소가 될 수 없다는 점 등이다. 즉, 이씨의 죽음은 자살일 뿐 남편 최씨의 폭력과는 무관하다는 이야기다. 그녀가 남긴 유서가 있고, 진단서가 있고, 아버지의 폭력을 목격한 자녀들이 있지만 재판부는 그것이 '죽을 만큼' 힘들었음을 인정하지 않았다. 남편 최정환의 폭력이 없었다면 죽을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이지만 그러한 상식도 판결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우리의 무관심과 무지, 침묵이 아내들을 죽였다
이런 판결이 가능했던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아내폭력에 대한 우리의 무지와 무관심, 침묵에 있다. 가정폭력 가해자가 아니라 집안의 가장으로 보는 시선들, 가정폭력이 아니라 부부싸움으로 보는 시선들, 가해자의 잘못이 아니라 부부이기에 피해자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추측하는 편견들이 모여서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없다.
2008년 기준 가정폭력 사범 1만2840명 가운데 14%만이 기소됐고 48%가 불기소 처분됐다. 37%는 기소유예로 단 며칠 만에 풀려났다. 이씨가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혼자의 힘으로 폭력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어떠한 방법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故 이금례(가명)씨가 그러했듯이 '아내폭력' 피해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고립'이다. '고립'은 가해자가 구체적으로 폭력의 내용이면서 아내에게 일어나는 결과이기도 하다. 가해자는 아내를 무력화하는 방법으로 고립을 선택하며, 가정폭력에 대한 총체적인 침묵과 무관심이 더해지면서 아내들을 더 철저히 고립시킨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내들을 고립시키지 않는 것, 아내들이 폭력 상황에 혼자 남겨지지 않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지지를 보내는 일이다.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이웃의 도움요청에 귀 기울이고 폭력적인 상황에 고립되지 않게끔 역할을 찾아야 한다. 죽음을 선택하거나 혹은 살인을 선택하지 않도록 최소한의 안전망을 우리 안에서 만들어 가야 한다.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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