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도 외국인도 아닌 '라이한 궉'의 기구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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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상담소 댓글 0건 조회 4,198회 작성일 08-05-09 10:24본문
한국인도 외국인도 아닌 '라이한 궉'의 기구한 삶
조선일보 | 기사입력 2008.05.09
'동남아 엄마'의 아이들 ② 제2의 라이한? 베트남 간 뒤 불법체류자 전락하기도 한국인도 외국인도 아닌 기구한 人生
베트남
남부 떠이닌성(省)의 농촌 마을. 한국 에서 온 기자를 맞은 응우옌(여·47)씨는 외손녀를 내려놓더니 서랍장을 열었다. 그녀가 주섬주섬 꺼낸 것은 녹색의 한국 여권. 여권 속에는 그녀가 안고 있던 아기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070331―4○○○○○3 ○주은.' 외가 식구들은 '주은'이란 한국이름을 발음하기 힘들어 대신 '냐'라는 베트남 이름으로 아이를 불렀다.
↑ 베트남에서‘냐’라는 이름으로 자라고 있는 주은(1)이가 자신의 한국 여권을 낯설게 바라보고 있다. 주은이의 아빠, 엄마는 맞벌이를 하느라 아이를 돌볼 수 없는 처지다. /호치민=김진명 기자
경기도 시흥 출생인 주은이는 생후 8개월 만인 작년 11월 이곳으로 왔다. 한국인 아빠(43)는 마흔 살까지 저축한 돈을 베트남 신부를 맞는 데 다 써버린 중소기업 직원. 엄마(22)는 "돈을 벌어야겠다"며 전자부품 조립공장에 취직하면서 주은이를 친정에 맡겼다. 엄마는 분유값으로 매달 10만원을 베트남에 보낸다.
결혼 6년째인 필리핀 출신 아내 로리나(39)씨와 남편 박모(47)씨. 서울 쌍문동 반지하 단칸방 가족 사진 속엔 엄마의 큰 눈망울과 아빠의 동그란 코를 닮은 혜리(5), 혜린(3) 자매가 웃고 있다. 그러나 방에는 자매의 흔적이 없다.
로리나씨의 남편은 세차원. 남편의 수입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웠던 그녀는 2005년 6월 갓 백일 지난 혜린이를 필리핀 친정에 맡기고, 큰딸 혜리는 주중 5일간 돌봐주는 천주교의 한 어린이 집에 맡겼다. 그러고는 재봉공장 보조로 취직했다. 로리나씨는 100만원 월급을 받으면 필리핀으로 20만원을 송금하고, 큰딸 보육료로 20만원을 낸다. 자매가 한국과 필리핀에서 따로 자란 지 3년. 언니와 동생은 이제 만난다 해도 서로 말이 안 통할 처지다.
◆"키우기 어려워 보낸다"
이주여성 쉼터 '위홈'을 운영했던 김민정씨는 "이주 여성들도 아이를 가난한 친정보다 한국에서 키우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현실은 이런 바람을 허락하지 않는다. 가장의 벌이만으로는 아이들의 양육비를 대기가 쉽지 않아 맞벌이를 나서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를 맡아줄 사람은 없다.
2006년 여성가족부 가 이주여성 엄마들에게 "아직 학교에 안간 자녀들은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베트남 출신 엄마들은 무려 70.9%가 "아이 혼자 지낸다"고 답했다. 다른 나라 출신 엄마들 중에는 30%만이 이같이 답했다.
아이를 양육기관에 보내는 엄마들만 골라 한 달 양육료를 물었더니, 이주여성 엄마들은 평균 27만원을 쓰고 있었다. 반면 베트남과 필리핀 출신 엄마들은 20만원선이었다. 두 나라 엄마들의 형편이 상대적으로 넉넉지 못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처지에서 엄마들은 아이들이 클 때까지 친정으로 보내자고 결심하는 것이다.
현재 베트남에 파견된 UN인권정책센터 소속 김재원씨는 "그러나 외가가 가난해 아이들이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고 말했다. 3~6개월마다 비자를 연장하는 데 한국 돈 6만~7만원이 드는데, 이는 베트남 노동자 한 달 월급이 넘는 돈이라는 것이다. 김씨는 "때문에 외조부모가 비자 연장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늘어나는 불화·이혼도 원인
국제 결혼 가정의 늘어난 불화도 '제2의 라이한?'을 낳는 주된 이유다. 선미(가명·여·5)가 베트남 속짱(Soc Trang)성의 외가에 살게 된 것도 엄마(35)와 아빠(42)의 불화 탓이었다. 아빠는 엄마를 자주 때렸고, 엄마는 이를 피해 친정으로 왔다.
선미네처럼 불화를 겪는 국제 결혼 가정은 해마다 늘고 있다. 2003년 이후 국내 전체 이혼건수는 매년 줄고 있지만 국제 이혼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우리의 제도는 이주 여성에게 자녀 양육권을 주는 데 인색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2007년)에 따르면 한국인 남편과 이혼한 이주여성이 자녀를 키우거나 만나기는 매우 어렵다. 특히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 전에 이혼을 하면 비자 연장 절차가 까다로워 한국에 머물며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기 힘들다. 자신의 모성권이 보장되지 않으니 남편과 사이가 나빠지면 아이를 친정에 보내거나 이혼도 하지 않고 모국으로 돌아가 버리는 경우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 한국인도 베트남인도 아닌
2005년 대만 정부는 베트남에 살고 있는 대만·베트남 혼혈아가 3000명 이상이라고 밝혔다. 대만에 시집간 베트남 여성이 당시 약 9만~10만여명이었다. 작년 말 현재 한국에 시집온 베트남 여성은 그 숫자의 3분의 1 정도인 2만7000여명. '제2의 라이한?'이 800~900여명에 이를 수도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이 아이들이 자칫 한국인도 베트남인도 아닌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전북 장수초등학교 다문화(多文化)담당 전재완 교사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속해 있는지 분명치 않아 혼돈을 겪는 아이는 사회적으로 외톨이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 기사입력 2008.05.09
'동남아 엄마'의 아이들 ② 제2의 라이한? 베트남 간 뒤 불법체류자 전락하기도 한국인도 외국인도 아닌 기구한 人生
베트남
남부 떠이닌성(省)의 농촌 마을. 한국 에서 온 기자를 맞은 응우옌(여·47)씨는 외손녀를 내려놓더니 서랍장을 열었다. 그녀가 주섬주섬 꺼낸 것은 녹색의 한국 여권. 여권 속에는 그녀가 안고 있던 아기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070331―4○○○○○3 ○주은.' 외가 식구들은 '주은'이란 한국이름을 발음하기 힘들어 대신 '냐'라는 베트남 이름으로 아이를 불렀다.
↑ 베트남에서‘냐’라는 이름으로 자라고 있는 주은(1)이가 자신의 한국 여권을 낯설게 바라보고 있다. 주은이의 아빠, 엄마는 맞벌이를 하느라 아이를 돌볼 수 없는 처지다. /호치민=김진명 기자
경기도 시흥 출생인 주은이는 생후 8개월 만인 작년 11월 이곳으로 왔다. 한국인 아빠(43)는 마흔 살까지 저축한 돈을 베트남 신부를 맞는 데 다 써버린 중소기업 직원. 엄마(22)는 "돈을 벌어야겠다"며 전자부품 조립공장에 취직하면서 주은이를 친정에 맡겼다. 엄마는 분유값으로 매달 10만원을 베트남에 보낸다.
결혼 6년째인 필리핀 출신 아내 로리나(39)씨와 남편 박모(47)씨. 서울 쌍문동 반지하 단칸방 가족 사진 속엔 엄마의 큰 눈망울과 아빠의 동그란 코를 닮은 혜리(5), 혜린(3) 자매가 웃고 있다. 그러나 방에는 자매의 흔적이 없다.
로리나씨의 남편은 세차원. 남편의 수입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웠던 그녀는 2005년 6월 갓 백일 지난 혜린이를 필리핀 친정에 맡기고, 큰딸 혜리는 주중 5일간 돌봐주는 천주교의 한 어린이 집에 맡겼다. 그러고는 재봉공장 보조로 취직했다. 로리나씨는 100만원 월급을 받으면 필리핀으로 20만원을 송금하고, 큰딸 보육료로 20만원을 낸다. 자매가 한국과 필리핀에서 따로 자란 지 3년. 언니와 동생은 이제 만난다 해도 서로 말이 안 통할 처지다.
◆"키우기 어려워 보낸다"
이주여성 쉼터 '위홈'을 운영했던 김민정씨는 "이주 여성들도 아이를 가난한 친정보다 한국에서 키우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현실은 이런 바람을 허락하지 않는다. 가장의 벌이만으로는 아이들의 양육비를 대기가 쉽지 않아 맞벌이를 나서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를 맡아줄 사람은 없다.
2006년 여성가족부 가 이주여성 엄마들에게 "아직 학교에 안간 자녀들은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베트남 출신 엄마들은 무려 70.9%가 "아이 혼자 지낸다"고 답했다. 다른 나라 출신 엄마들 중에는 30%만이 이같이 답했다.
아이를 양육기관에 보내는 엄마들만 골라 한 달 양육료를 물었더니, 이주여성 엄마들은 평균 27만원을 쓰고 있었다. 반면 베트남과 필리핀 출신 엄마들은 20만원선이었다. 두 나라 엄마들의 형편이 상대적으로 넉넉지 못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처지에서 엄마들은 아이들이 클 때까지 친정으로 보내자고 결심하는 것이다.
현재 베트남에 파견된 UN인권정책센터 소속 김재원씨는 "그러나 외가가 가난해 아이들이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고 말했다. 3~6개월마다 비자를 연장하는 데 한국 돈 6만~7만원이 드는데, 이는 베트남 노동자 한 달 월급이 넘는 돈이라는 것이다. 김씨는 "때문에 외조부모가 비자 연장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늘어나는 불화·이혼도 원인
국제 결혼 가정의 늘어난 불화도 '제2의 라이한?'을 낳는 주된 이유다. 선미(가명·여·5)가 베트남 속짱(Soc Trang)성의 외가에 살게 된 것도 엄마(35)와 아빠(42)의 불화 탓이었다. 아빠는 엄마를 자주 때렸고, 엄마는 이를 피해 친정으로 왔다.
선미네처럼 불화를 겪는 국제 결혼 가정은 해마다 늘고 있다. 2003년 이후 국내 전체 이혼건수는 매년 줄고 있지만 국제 이혼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우리의 제도는 이주 여성에게 자녀 양육권을 주는 데 인색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2007년)에 따르면 한국인 남편과 이혼한 이주여성이 자녀를 키우거나 만나기는 매우 어렵다. 특히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 전에 이혼을 하면 비자 연장 절차가 까다로워 한국에 머물며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기 힘들다. 자신의 모성권이 보장되지 않으니 남편과 사이가 나빠지면 아이를 친정에 보내거나 이혼도 하지 않고 모국으로 돌아가 버리는 경우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 한국인도 베트남인도 아닌
2005년 대만 정부는 베트남에 살고 있는 대만·베트남 혼혈아가 3000명 이상이라고 밝혔다. 대만에 시집간 베트남 여성이 당시 약 9만~10만여명이었다. 작년 말 현재 한국에 시집온 베트남 여성은 그 숫자의 3분의 1 정도인 2만7000여명. '제2의 라이한?'이 800~900여명에 이를 수도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이 아이들이 자칫 한국인도 베트남인도 아닌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전북 장수초등학교 다문화(多文化)담당 전재완 교사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속해 있는지 분명치 않아 혼돈을 겪는 아이는 사회적으로 외톨이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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