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 여성과 그 자녀들, 음지에서 양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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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상담소 댓글 0건 조회 3,312회 작성일 07-11-22 10:33본문
이주 여성과 그 자녀들, 음지에서 양지로
※ 21세기 꼬레아.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밀려오는 외국인 노동자와 국제결혼으로 외국인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백만 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여전히 한민족 순혈주의 정책과 사고는 계속되고 있다. CBS는 한국언론재단의 지원으로 국내외 취재를 통해 외국인 백만 명 시대의 대한민국을 조명하고 바람직한 정책 방향을 제시한다.
◆ '담을 높여라! 외국인 들어올라'
- 싱가포르서 외국인 가정부는 싱가포르 국민과 결혼 못해
중국계와 말레이계, 그리고 인도계 등 여러 인종이 모여 살아 외국인에 대해 비교적 개방적이라고 알려진 싱가포르. 필리핀 여성 리자(29) 씨 역시 지난 2001년 1월, 처음 입국할 때만 해도 싱가포르가 그런 나란 줄 알았다.
우리나라 돈으로 한 달에 20만원 정도 받기로 하고 가정부로 들어온 리자 씨는 그러나 2년의 계약 기간이 끝나고 돌아갈 때쯤 싱가포르가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당시 리자 씨는 싱가포르인이었던 현재 남편의 아이를 가진 상태였지만, 싱가포르 정부는 리자 씨가 '가정부'였다는 이유로 결혼은 물론 재입국을 거부했기 때문이다.3개월짜리 방문 비자로 입국과 출국을 반복하다가 2004년 결국 리자 씨는 추방당해야만 했다.
미혼모 아닌 미혼모로 그렇게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등을 전전하던 리자 씨는 "첫 아이를 낳았지만 1년 동안 싱가포르에 들어갈 수 없었다. 다행히 시어머니가 인도네시아에 있는 당신의 친정집에 머물 곳을 마련해주셔서 그곳에서 남편과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날 수 있었지만 난 하루도 울지 않은 날이 없었다"라며 당시를 '눈물로 보낸 날들'이라고 얘기했다.
이에 대해 이주 여성들을 지원하는 시민단체 '홈'의 상주 직원 시시 씨는 "가정부가 싱가포르인과 결혼하는 것을 정부가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싱가포르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많은 후진국 여성들이 가정부로 들어올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싱가포르 인구 450만 명 가운데 3분의 1을 차지하는 외국인 노동자, 또 그 가운데 18만 명으로 추산되는 가정부들. 그리고 그 중의 한 명에 불과했던 리자 씨.
싱가포르 정부는 그런 리자 씨가 싱가포르인이 아닌 그냥 '외국인 가정부'로 일하다 조용히 돌아가길 요구했던 것이다.
이처럼 가정부에 대한 차별뿐만 아니라 학대까지 종종 발생한다는 게 시민단체 '홈'의 운영자 브리짓 씨의 말이다.
그녀는 "우리를 찾아오는 가정부들 중엔 고용주로부터 폭력과 학대에 시달려온 사람들이다. 한 가정부는 집주인이 귀에 젓가락을 꽂아 심하게 다친 상태에서 도움을 요청하러 온 적이 있었다. 집주인은 그녀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방치했다. 심지어 자신의 소변을 마시라고 강요하는 고용주도 있었다"고 오히려 담담하게 말했다.브리짓 씨는 이처럼 학대 받는 이주 여성을 위해 기부금을 모아 그들이 잠시 따로 머무를 수 있는 '대피처'를 마련했다. 많게는 120여 명까지 지낼 수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만난 21살의 필리핀 여성 A씨는 가수가 되기 위해 싱가포르에 들어갔지만 돌아오는 것은 주인의 성적 학대였다고 털어놨다.
그녀는 "싱가포르에서 4개월 정도 일하려고 입국해 호프집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했는데 주인이 웃옷을 벗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라고 했다"며 "돈을 더 벌려면 손님들과 '2차'를 나가라고 강요해 '대피처'로 도망쳤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싱가폴에서 만난 필리핀 여성 외국인 노동자]
- 인권의 나라 프랑스마저…
지난 10월에 찾은 프랑스에서는 최근 이민자에 대한 'DNA 검사 법안' 문제를 놓고 정부와 시민단체가 갈등을 빚고 있었다.
프랑스 정부는 '남편을 만나러 들어오는 부인과 자식들이 과연 진짜 가족이 맞는지 확인하겠다'는 입장인 반면 시민 단체는 '명백한 인권 침해'라고 주장하는 형국이다.
자신 역시 튀니지 출신으로 프랑스 시민권을 얻은, 시민단체 대표 따레씨는 "DNA 검사가 항상 완벽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가족은 반드시 혈연으로만 이뤄진다고 할 수 없지 않는가. 가령 자녀를 입양해 가정을 꾸리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고 프랑스 정부의 이 같은 방침을 비난했다.
이와 함께 그는 "노동력이 부족해 어쩔 수 없이 후진국 남성에게 체류권을 주고는 있지만 부인이라는 이유로 프랑스어도 못하고 경제력도 없는 후진국 여성까지 다 받아줄 순 없다는 게 프랑스의 속내"라고 비판했다.
이 같은 반(反)이민정책으로 프랑스에 DNA법안이 있다면, 독일에는 독일어 필수 코스가 있다. 터키와 아프리카 등 특정 국가의 이민자가 독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독일어 시험을 거쳐야 한다.
특별한 기술이 없는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개발도상국가의 여성들이 독일에 있는 남편을 만나려면 독일어를 읽고 쓸 능력을 갖춰야 입국할 수 있다는 게 한 외교부 관계자의 말이다.
이 관계자는 "지난 8월에 개정된 이민법에 따라 독일에 거주하는 외국인 남성이 자신의 부인을 데려오려면 부인은 독일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알아야 하고 비자를 신청할 때 독일 정부가 인정하는 독일어 자격증을 제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 등 이른바 '잘 나가는' 나라의 여성들은 독일에 먼저 입국한 뒤 나중에 자격증을 얻어도 된다.
한국 역시 나중에 자격증을 얻어도 되는 나라에 속한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일까.
◆ 부동산 '중개업', 국제결혼 '중개업'
지난 10월 초 싱가포르의 한 쇼핑센터 2층 로비에는 곱게 화장을 한 3명의 베트남 여성이 연신 손목시계를 쳐다보고 있었다.
시계바늘이 10시를 가리키자 한 중국계 싱가포르 남성이 로비에 도착했다. 그가 '해외 결혼 소개소'라고 씌어진 사무실 문을 열자 기다리던 베트남 여성들이 따라 들어갔다. 이 여성들은 벌써 며칠째 싱가포르 남성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광경은 싱가포르에서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그것은 싱가포르가 국제결혼 중개업을 합법화 시켰기 때문이다.
이 소개소 사장 토(Toh)씨는 사무실 한쪽 벽에 걸려 있는 사진을 한 장 가리키며 "한 2년 전에 성사시킨 싱가포르 남자와 베트남 여성의 결혼 사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남자는 선천성 척추 장애를 앓고 있어 키가 굉장히 작지만 중고 자동차 매매업을 하기 때문에 돈은 많이 번다"며 "나이 차이는 30살 정도"라고 덧붙였다.
국제결혼 중개업은 우리나라에서도 곧 본격화될 조짐이다. 현재 국회에 결혼중개법안이 발의돼 있고, 보건복지 소위원회를 통과했다.
우리나라에 등록된 외국인 72만여 명 가운데 12%에 해당하는 8만7천명이 국제결혼으로 들어온 사람들이다. 이 가운데 86%가 여성이다. 결혼 이주여성과 그 자녀들을 합치면 지난해보다 4만2천명이 더 늘었다.
공익변호사그룹 소라미 변호사는 이 같은 현상은 "'자발적 국제결혼'이라기보다 '국제결혼사업'이 가져온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국제결혼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전제하며 "하지만 최근에 빈번한 사례를 보면 신체 장애를 가진 남성의 경우 외국인 여성이 일단 직접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숨기긴 어렵지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정신 장애를 앓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숨기고 결혼한 뒤에 문제가 발생해 조기에 결혼 생활이 파탄 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게 바로 상대방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제공을 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문제다. 기본적으로 결혼중개업자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정확한 정보 전달"이라고 강조했다.
◆ 세계는 이민 자녀들에 대해 고민 중
지난 10월 15일 프랑스 북부의 한 초등학교 교실. 프랑스인 교사와 마주하고 있는 10여 명의 학생들은 나이도 인종도 다 제각각이었다.
이 학교는 외국인반을 따로 만들어 앙겔리크씨와 같은 정규 교사가 이주 외국인의 자녀들에게 프랑스어 등 교육을 전담하고 있다.
"9월부터 학기가 시작됐다. 학기 중에도 계속 아이들이 입학하고 있다. 그러면 아이들이 프랑스어를 얼마나 할 수 있는지, 고국에서 학업 수준은 어땠는지 등을 확인한 뒤 전혀 말이 통하지 않으면 내가 아랍어나 포르투갈어를 조금씩 사용해 아이들의 능력을 테스트한다. 그런데 파키스탄에서 온 아이들 같은 경우 프랑스어를 전혀 할 줄 모르면 나도 그 언어를 모르기 때문에 수학 과목 등으로 대신 시험을 보기도 한다"고 앙겔리크 씨는 설명했다.
말도 안 통하고, 인종도 다른 아이들을 교육하려면 늘 맞춤식 교육을 준비해야 한다는 게 앙겔리크 씨의 말이다.
이 학교 니콜 교장은 "아이의 부모가 불법체류자인지, 어떻게 프랑스에 들어왔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며 모든 이주 아동에게 교육의 기회를 열어놓자는 게 프랑스 정부의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움직임은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경기도에 있는 시화초등학교 역시 이주민 자녀들을 위한 학급이 있다. 이곳에서는 베트남, 러시아, 몽골 등에서 온 아이들이 한 교실에 모여 한글을 배우고 또 서로의 문화를 가르쳐주고 있다.
정규초등학교에서 이처럼 외국인반을 편성하고 있는 학교는 아직은 경기도에서 시화와 원일초등학교 두 곳 뿐이지만 이제 우리도 이주아동의 실태를 현실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첫 걸음을 뗀 것이다.
이 학급을 맡고 있는 신봉숙 교사는 "러시아 아이 2명, 몽골 아이 7명이 우리 반에 편성돼 있다. 이 아이들에게 우선 선행되어야 할 것은 한국어 적응이다. 그 다음이 문화적응이다. 자기 반에 각 시간표가 있어서 과학, 미술, 체육 등은 각 반에 가서 배우고 어느 정도 말을 할줄 알면 예체능 협력학급에 가서 공부를 한다"고 설명했다.
이주 여성들이 느끼는 소외감을 이들의 자녀들이 똑같이 느끼고 있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의 여러 나라들은 미래의 힘이 될 이민 2세들에 대한 대우를 조금씩 바꿔나가고 있다.
물론 차별 없는 교육과 동등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백년의 이민 역사를 가지고 있는 프랑스에서도 이민 2세나 3세 같은 이민자 자녀들과 어떤 식으로 관계를 모색할지에 대한 고민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프랑스 시민과 노동 이주민 사이의 긴장감이 고조될 무렵인 지난 1984년. 인종차별반대 시민단체인 SOS가 창립됐다.
SOS의 도미니크 회장 역시 아버지가 토고 출신의 이주 노동자였다. 도미니크 씨는 "노동 인력이 필요했던 70년대, 프랑스는 우리 아버지와 같은 단기 노동자들을 불러들였다. 그런데 이들이 돌아가지 않고 프랑스에 계속 남으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아차, 한 거다. 더는 백인 가톨릭계 사회를 유지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에 이주민들과의 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도미니크 씨는 이어 "오늘날 프랑스 사회는 전통 백인 가톨릭 계급은 이민 2,3세들이 엘리트화 되고 있어 경쟁 상대로 보고 있다. 이 두 계급 사이의 경쟁 관계로 보이지 않는 긴장감과 차별이 생기고 있다. 우리 단체는 이런 긴장감을 주시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소수에 해당하는 이민 2,3세들이 프랑스 사회에 무사히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가 한창 독일로 간호사와 광부를 보내던 60년대, 지금은 독일 시민이 된 박정자씨도 그 당시 간호사로 독일 땅을 밟았다.
40년 가까이 독일에서 살아온 박 씨의 직업은 두 개다. 한의사와 유치원 원장. 박씨의 유치원은 베를린에서 환경이 열악한 곳으로 꼽히는 노이른 지역에 있다.
유치원생 서른명 가운데 독일인 가정의 아이는 한 명뿐이다. 나머지는 터키, 루마니아, 아프리카 등에서 온 이주 어린이들이다.
"사회적으로 다민족 간에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또 아이들이 부모 세대보다 밝은 미래를 산다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어릴 적부터 독일어를 가르쳐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을 유치원부터 시작하는 거다. 아이들이 정말 부지런히 배워 각자가 독일 사회에서 주인공이 돼 뿌리를 내리고 자기 자리를 찾아나가는 방법을 가르치는 게 우리 유치원의 목적이다."
이제는 독일인이 된 박 씨지만, 자신 역시 이방인이었던 때를 생각하면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위와 같은 해답을 내놨다.
외국인 백만 시대를 맞은 우리나라에서도 앞서갔던 나라들이 겪어온 갈등이 시작되고 있다.
이들로부터 오는 갈등을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 경희대학교 오윤자 교수는 지금이 이민자 문제, 특히 다문화 가정에 대한 틀을 제대로 잡아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오 교수는 "결혼이민가족 형성이 최근 들어 활발해지고 있다"며 "이에 따라 영유아나 청소년기의 이민 2세들이 앞으로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해야 한다. 이들에게 무조건 한국에 동화되라고 요구하는 게 옳은지 판단함과 동시에 상대방의 문화를 알고 배우려는 양성 평등의 접근법을 익혀야 한다"고 설명했다.
물리적 국경선을 넘었더라도 아직 걷히지 않는 장벽인 심리적 국경선까지 허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오 교수는 "세계 모든 나라를 보더라도 정부보다 시민단체가 압도적으로 이민자들에게 따뜻한 온정을 나눠줬다"며 "하지만 시민단체들만의 노력만으로는 앞으로 힘들다. 정부와 범국민적 차원에서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백의민족 순혈주의를 강조해온 한국도 이제 국민의 2%를 외국인이 차지하고 있다.
이주 여성, 그리고 그 자녀들. 그들은 백의민족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 나라에서 쫓아내야 할 사람들은 더더욱 아니다. 그들도 이 땅에서 아침에 눈을 뜨면 똑같이 떠오르는 태양을 보는 우리와 같은 사는 사람들이다.
이주여성과 그 자녀들, 이제 그늘을 넘어 양지로 나와야 할 때가 됐다.
CBS사회부 조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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